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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07 692회 0건
거래-거래-



현 팀장이 나에게 커피를 가져왔다.



‘선배, 나 요즘, 일이 잘 안 풀리네.’



‘왜? 무슨 일 있어?’



현 팀장은 내 대학교 후배로 나와는 다른 팀이지만 꽤나 능력 있는 캐리어 우먼 중의 하나다.



‘새로 맡은 회사가 왠간히 깐깐 해야지 말이야. 선배도 알다시피 나 요즘 그이랑 별로 잖아! 머리도 복잡하구…..’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가정 생활 평안한 사람들은 보기가 드물었다. 나도 아내와 이혼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별달리 재혼을 고려할 만한 심적인 변화는 없다고 봐야 했다. 부모님 들이야 재혼하라고 성화셨지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섹스가 그리울 때는 스포츠 마사지 겸, 음란 쭈물팅을 받으러도 가고, 단란주점에 가면 2차를 기다리는 수두룩 뻑뻑한 많은 여자들 중에서 그냥 괜찮다 싶은 여자를 골라 하룻밤 자고 나면 그런 대로 2주정도는 버틸 수 있었으니까.



‘뭐가 문제야?’



‘그냥 머릿 속이 복잡해서 그런지, 일도 손에 않 잡히고, 이번 프로젝트는 좀 쉬었으면 해.’



‘계약단계 까지는 간 거야?’



‘아니, 거기까지 갔으면 말도 않 해요. 그 회사 프로필이랑, 재무재표 등만 받아 왔는데,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못했다구. 선배가 좀 맡아주면 안될까? 나 숨 돌릴 동안만….’



‘알았어. 나한테 넘겨, 프레젠테이션 날짜가 언제야?’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결혼한 상황을 짊어지고 이 바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경우였다. 사실 직장에서도 그렇지만 여성에게 주어지는 불평등 조항들은 너무 많다고 나 또한 평소에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남자들이야 씨만 뿌려댔지, 10달 동안 아기를 몸 안에 담고서 그 고생도 모자라 출산의 고통까지 떠 안게 되는 여자의 운명. 그 뿐인가? 아무리 맞벌이로 가사를 분담한다고 해도 어차피 여자에게 돌아가게 될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나는 흔쾌히 현 팀장의 일을 떠 안기로 했다. 한 보따리나 되는 회사 자료들을 우리 팀의 방으로 옮겨오면서 그녀가 나에게 눈웃음을 친다.



‘선배, 부탁해. 계약 성사되면 내가 한턱 쏠게. 외로운 이혼남, 내가 구제해 줘야지, 별 수 있나?’



‘으이그, 저걸 후배라고!’



나는 주먹을 내저었다. 의뢰 회사로부터 요청된 기일은 촉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팀원들을 회의실로 집합 시켰다.



‘아니 멜에도 없던 회의라니…. 뭔일 났데요?’



‘자,자, 조용히 하고 잘 들으세요. 다른 팀에서 추진하려던 프로젝트가 기어이 우리에게 떨어졌습니다. 피할 수도 없는 지명 방어전이니 어쩌겠어요? 코피 터지고, 이빨 나가도 밀어 붙어야지.’



‘팀장님, 가뜩이나 일도 밀려 있는데, 이렇게 바로 위에서 공습투하 하시면, 아작 나는 거, 시간 문제 라니깐요. 저, 잘못하면 집에서 쫓겨나요.’



결혼한 지, 3달도 채 안 되는 김대리, 아마도 그럴 것이다. 허구 헌날 야근에, 출장에, 그 고소한 신혼의 재미는 고사하고 지금도 불 보듯 뻔한 그 입 싸움과 자존심의 대결이 그 두 사람 사이를 들들 볶고 있을 그 현실…



‘알았다니깐. 총대는 내가 지기로 했으니까. 현재 일이 좀 한가한 사람이 나를 도와주면 좋겠는데… 80프로는 내가 할꺼야. 걱정말고 거수 쫌 하라니깐!’



‘에이 팀장님도… 80프로는 머리만 쓰는 일이고, 20프로는 뼈빠지게 몸으로 떼우는 일이잖아요? 어차피 우리들이야 시다바리로 힘든 건 마찬가진데, 너무 완곡한 표현 쓰시는 거 아니세요?’



요즈음 것들은 까라면 까는 거지 라는 옛말도 통하질 않는다. 자기 앞에 선을 정확히 그어놓고, 누가 밟을 기세라도 보이면, 대번에 으르렁 거리는 칼 같은 개인주의를 모두다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인 8명의 팀원 중에서 3명씩이나 손을 들어 준다. 집에서 쫓겨날 것 같다는 김대리도 끼어있는 것은 자못 우스운 결과 였다.



‘집에서 쫓겨 날 것 갔다며? 일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사람은 나 하나면 족허리… 안되면 자네는 좀 삼가지 그러셩?’



‘에이, 놀리지 마서요. 팀장님 솜씨야, 사내가 다 유명한데, 이렇게 가까이서 도와야 배울게 있죠! 그래야 진급에 도움이라도 되지 않겠어요? 사람이 아무리 눈 앞에 다툼이 있다손 쳐도 멀리 내다 봐야지…’



‘멀리 씩이나….’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회의실에서 내 보내고, 이번에 떠 안게 된 프로젝트의 개요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1주일 후에 있을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내가 할 테니, 김대리는 내일, 모래까지 의뢰사의 경영분석 자료랑, 외부 의견서, 중장기 경영플랜 등을 모아서 정리한 뒤에 나에게 주고, 미스 신은 프레젠테이션 관련 의뢰사 와의 약속이나 기타 준비 사항들 체크하고… 또 뭐더라… 참, 그리고, 유대리는 우리 회사 계약 실적 자료 좀 정리해서 뽑아다 줘. 굵직한 놈으로만 골라서… 이상. 일하자구!’



나는 벌써부터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작업에 들어갔다. 김 대리는 내 옆자리 테이블에 앉아서 자료를 분류하면서, 사전 드래프트도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 봤다.



‘아니, 팀장님! 어떻게 그 많은 내용을 종이 한장, 메모지 한장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가세요?’



‘자네 그거 알어?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는 플로우 챠트를 그리지 않는다는 속설 말이야. 그걸 그린 다는 얘기는 벌써 머릿속에 그 아이디어가 없거나 불확실 하기 때문에 그려본다는 것이지.’



‘아, 그렇구나!’



딴은 그랬다. 내가 갖고 있는 강점은 외국에서 공부했다라는 것 보다는 한국 실정에 맞는 빨리빨리 문화에 맞추어 내는 속도와 성취도에 있었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무슨 창업일 이내, 기념일에 맞추어 무슨 일들을 꼭 마무리 지으려는 사람들의 속성. 그것을 받아내려면 나 같은 속전속결의 해결사는 언제나 환영 받는 구석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람이 좀 바뀌었네요?’



‘아, 네. 현경숙 팀장이 몸이 않 좋아서 요즈음 쉬고 있습니다. 제가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 모자라는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하여 주십시오.’



‘뭘요! 표팀장님 이야, CI업계에서 이름 모르면 간첩이죠. 저희가 오히려 부탁 드릴께요.’



‘자, 그럼 임원들께서 다 오신 것 같으니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기획실장과의 첫 대면을 통성명도 없이 마무리 하면서, 김 대리에게 불을 끄고 빔 프로젝터를 켜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우리가 들고 온 노트북을 통해 벽의 스크린에는 어디서 많이 본듯한 회사의 로고가 하나 보여 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유강산업의 CI작업을 의뢰 받은 CRE8의 표준호 입니다. 이렇게 임원분들을 모시고, 자리를 갖게 되어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견고한 기업의 이미지 창출을 위해 저희 회사의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을 말씀 드리면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시는 것은 다 아시다 시피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박통 시절부터 상한가를 치던 어떤 기업의 회사 로고 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의 CI(Cooperative Identity)업계에서는 전설 같은 얘기들이죠. 이 한 예만 갖고도 CI작업의 중요성은 꼬리를 달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 로고를 90도 각도로 틀어 보겠습니다. 보셨죠? 이 로고가 무언지 아시겠습니까? 네. 아시는 군요! 바로 유명한 외국의 C항공사의 로고 입니다. 그 당시 한국에 CI작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던 시절, 세계만방으로 뻗어간다는 개념으로 D사의 로고는 많은 칭찬을 들었지요. 그러나, 한가지 간과한 것은 세계화의 추세에는 전혀 대비책이 없는 그림 장난만 쳤다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된 겁니다. 그게 무어냐 구요? 바로 페이턴트, 우리말로 하면 특허권 이지요. 외국은 그 당시 이미 회사의 이미지를 표방하는 회사 로고와 회사명에 대한 특허관련 업무가 정착되어서 중복되는 상호나 상표가 출현 했을 시에는, 등록되기 전에 분쟁조정에 들어가거나, 재판을 통해 그 기득권을 가리게 되어있는 체제가 가동 중 이었죠. 가까스로 합의가 되어 D사가 C항공사에 지불한 합의금은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숫자였다고 전해집니다. 사전에 정식으로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나갔다면 그런 예상치 못한 거대 출혈은 반드시 막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좌중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는 탄성들이 쏟아졌다.



‘우선 저희 CRE8의 주된 업무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처음부터 CI작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기업은 없지요. 맨 처음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창업자가 정한 이름으로 밀고 나가고, 상표도 대강 싼값에 의뢰한 걸로 갖다 붙이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러다가 유명세를 타고, 매출이 증가하고, 국내 시장으로서는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회사의 중장기 전략들이 포진하기 시작하면서 CI작업에 대한 재평가가 다시 이루어 지게 됩니다. 저희는 이 시점에서 회사의 중장기 플랜을 검토하고, 경영분석, 외부에서 의뢰회사를 조감하는 다각적인 의견들, 그리고, 생산되는 제품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조감을 통해 회사가 나아가야 할 궁극의 목표지점을 환산하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회사의 기존 이미지, 앞으로의 지향목표, 포부 등을 감안한 몇 가지 상호와 상표에 대한 시안을 제시하고, 그 범주 안에서 전세계적인 상호 및 상표에 대한 특허권 데이터베이스 뱅크를 탐색하여, 유사성 여부를 검증해 나가게 됩니다. 이 일은 저희에게 따로 의뢰 하셔도 되고, 귀사와 관련이 되시는 특허권 관련 전문 변호사를 통해서 일을 추진하셔도 무방합니다.’



‘아, 그것은 저희 쪽에서 사람이 하나 따라 붙었으면 하는데요.’



기획실장의 목소리였다.



‘아! 그렇습니까?’



‘일은 그 쪽에서 추진해 주시고, 우리 쪽에서는 계약담당 관련 전문 변호사가 일을 같이 하게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세한 실무는 이 자리에서 피하도록 하죠.

얘기로 돌아가서, 이렇게 시안을 갖고 서치를 하면서 최종적인 윗선의 의견 결집이 이루어지면 그 내용으로 법적인 특허권 고시를 하게 되지요. 국내는 물론 주요국가의 특허청에 새로 제작될 상호와 상표를 등록 전에 고시하는 거지요.’



‘고시가 뭐지요?’



‘미국의 예를 든다면, 미국의 특허청에서는 새로 등록할 상호와 상표가 나오면 일단 자체 내에서 유사성 여부를 검증한 뒤에 30일에서 60일에 걸치는 기간동안 이의신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람에 새로운 상호와 상표를 공적으로 게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공람을 살펴보고,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상호와 상표간에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언제든지 이의 신청을 해서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만일 비슷한 것이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첫째는 특허청의 조정을 받게 되죠. 특허업무의 중요한 강점은 무엇보다도 기득권에 있습니다. 누가 먼저 등록했느냐가 분쟁조정의 열쇠가 되지요. 그러나, 구지 써야 되겠다면 기득권을 갖고 있는 회사로부터 양해 각서를 교환하면 등록이 가능해 집니다.’



‘양해각서라는 게 뭡니까?’



‘아까 국내 D사와 외국의 C항공사 예를 보셨죠? 코메디 같긴 하지만, 양해각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D사는 항공 여객업에 진출하지 않는다, C 항공사는 떼부자가 된다손 치더라도 D사 같은 수출생산 업종에는 발을 들여놓질 않겠다, 뭐 이런 거죠. 눈가리고 아웅 이긴 하지만서도…’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날의 프레젠테이션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고, 좌중에 앉아 계시던 회장님께서 우리 회사에게 일을 맡기라고 하시는 구두 계약까지 말씀하셔서 내 심정은 하늘을 찌를 듯이 기쁘기만 했다.



‘와, 팀장님 정말 대단하시네. 아나운서로 나가셔도 되겠어요. 난 사람들 앞에 서면 떨려 놔서….’



‘그게 원투 데이에 갖추어지는 게 아닐세 그랴.’



나와 김 대리가 프레젠테이션 장비를 치우며, 임원들이 자리를 뜨는 사이, 기획실장이란 사람이 나를 보자고 했다.



‘프레젠테이션 인상 깊었습니다. 역시 이름값이란 게 다른 게 아니더군요. 제가 소개할 사람이 있는데…’



‘아까 말씀 하시던 그 변호사 분 이요?’



‘이 회의에 참석하질 않겠다고 해서 제가 강권은 못했습니다만. 저….윤미라 라고 아시죠?’



‘네?’



‘놀라실 것 까지야! 제 집사람 입니다. 구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 좀 껄끄럽긴 해도 일은 일이지 않습니까? 이혼하시고 아직까지 혼자 사신다고 들었는데….’



‘아! 그렇군요! 제가 목구멍이 포도 청이라 미라, 아니, 죄송합니다. 미세스 윤의 결혼 소식을 알면서도 참석을 못해서… 늦게나마 축하 드립니다.’



그가 아내의 재혼 상대였다니! 아내는 여러 회사들의 법률 자문을 해주던 변호사 였다. 뛰어난 능력과 외모 덕분에 인기가 꽤 있었는데, 이혼했다는 소식에 법률자문을 해오던 그가 그녀에게 먼저 손을 내민 모양 이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동안 김 대리는 나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굳어진 내 얼굴로 인해서 였을 것이다. 이혼하고서 다신 안 보겠다고 했었는데, 이 바닥에 굴러먹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다시 얼굴을 마주해야 된다는 현실은 나를 딱딱하게 굳혀갔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 이었다. 회사에 들어서서 내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환한 얼굴로 현 팀장이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선배! 따냈다며? 이런 일이 우째? 나도 보다보다 이렇게 프레젠테이션 만하고 쉽사리 그 큰일을 따오는 사람은 첨 봤네. 대단해요!’



현 팀장이 엄지 손가락을 내밀면서 개그맨 흉내를 내면서 내 기분을 돋구어 주려고 애썼지만 별로 흥이 나질 않았다.



‘김대리가 무슨 일 있었다고 그러던데, 사실이야?’



‘응. 기분이 별로네. 지금 쯤은 잊을 만도 한데….’



나는 대답 대신에 서류를 챙겨서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이제부터 날밤을 까는 작업들이 이루어 졌다. 기존의 의뢰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상호와 상표 디자인을 재분석하고, 중장기 플랜에 의해 회사가 지향하는 형태의 회사를 단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로고의 디자인은 몇 개의 시안을 벽에 걸어 놓고, 합당한 이유와 가설 속에서 조금씩 변형되고, 바뀌어져 회의실의 벽은 온통 로고의 홍수처럼 도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3일 밤을 새면서도 작업을 하는 도중에 밤을 같이 지새운 직원은 없었다. 다들 돌아갈 가정이 있었고, 보금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나는 딱이 돌아갈 정 붙은 곳이 없었다. 아이 라도 있었다면 얼굴이라도 볼 겸 갔겠지만 결혼 생활 내내 서로의 신경을 긁어놓기만 하는 삶을 살았으니 돈독한 부부애라고는 없었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저 일에 빠져서 서로가 서로의 신경을 최대한 도로 자극하지 않는 벼랑 끝 같던 생활. 그게 우리 부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섹스는 그 당시 이미 노동 이었고, 배설 이었으며,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대해야 하는 밥이었다. 3일째가 지나고 나는 다음날 의뢰사 에서 있을, 시안 검토 회의로 인해 옷도 갈아입질 못하고 자료와 장비를 챙겨 김 대리와 향하고 있었다.



‘철인이 따로 없네, 이건 뭐 마징가 제트도 아니고….’



‘왜, 부럽나? 그래도 가족이 있을 때가 좋아. 김 대리, 마누라 한테 잘해야 돼, 내 꼴 나지 말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3일 밤을 꼬박 일한 나는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집에 꼬박꼬박 돌아간 김 대리는 옆 자리에서 양복에 침까지 흘려가며, 졸고 앉아 있었다. 아마도 어제 안사람과 이불 속에서 신혼의 단꿈에 젖어 한 딱까리 거시게 치룬 모양이었다. 좋을 때지!



‘안녕하십니까? 차가 밀려서 조금 늦었습니다.’



회의실에는 벌써 기획실장과 미라, 임원 몇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김 대리에게 어서 장비를 연결하고 시안 회의를 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큰 타원형 회의실 탁자에서 정면의 나에게 가장 가까운 위치로 미라가 앉아 있었다. 그 뒤로 누구에게 뺏길세라 기획실장이 들러 붙어서 무슨 얘기인가를 귓속말로 계속 지분대고 있었지만 미라의 표정은 굳어진 채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 서로가 띄엄띄엄 앉아 있어서 실내의 불을 끄고 빔 프로젝터 만을 켜니 누가 누구 인지 잘 분간도 가질 않고 있었다.



‘짧은 기간 이었지만 저희는 3가지의 시안을 준비해 봤습니다. 첫번? 시안은 보시다 시피,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강을 내세워 상호명을 유강그룹 으로 지어 보았고, 보시는 것처럼 로고는 유강의 설립 초기부터 상표에 나와 있는 월계수 나무를 도식적으로 변형시킨 모습입니다. 색상은 미래를 지향하면서…..’



나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 되면서 몇몇 임원 분들은 졸고 계셨다. 회장님께서도 참석하질 않고, 임시 시안에 대한 의견 개진의 자리라서 그랬는지, 사람들은 긴장하고 있질 않았으며, 그로 인해 불을 끈 채로 극장안 처럼 되어 버린 조명하 에서의 주의 집중은 애초부터 글른 얘기 일 수도 있었다. 탁자에서 몸을 틀어, 나를 정면으로 맨 앞에서 바라보던 미라의 꼬고 있던 다리가 갑자기 풀리고 있었다. 맨 처음에는 꼬은 다리가 불편해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꼬은 다리를 푼 미라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짧은 치마 임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서서히 벌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탁자 밑에 들어가 있을 두 다리를 정면의 나의 설명을 경청하는 자세로 틀어서는, 이내 벌려가는 그녀의 두 다리,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의 치마는 벌리는 두 다리로 인해 위로 말려 올라가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나와 눈을 맞추려 하질 않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그녀가 한 손을 옆으로 해서 뒤로 열중 쉬어 자세로 돌려놓고 있었는데, 그녀의 등 뒤에는 기획실장이 등뒤에 바짝 붙어 무언가를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질문 하는 것처럼 그녀의 귀에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는 것이었다. 뒤로 두른 그녀의 팔이 위 아래로 서서히 왕복을 하고, 기획실장의 눈은 스르륵 감겨가고 있었다. 그녀의 한 손은 이미 다 벌려진 가랭이 사이에 놓여져, 팬티도 없이 나를 향한 정면으로 까발려 진 채로 털도 다 밀어 버린 민둥 보지를 만장으로 까 내놓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그녀의 왕복운동은 속도를 더해갔고, 멀리 서도 빔 프로젝터의 빛에 반사된 그녀의 보짓물이 반짝이고 있어서 나는 가끔씩 서버린 좇대를 꺼뜨리기 위해 탁자에 두 팔을 집고서 엉덩이를 뒤로 빼야 했다.



‘ 자 이상 입니다. 김 대리 불 좀 켜지.’



두 사람은 황급히 옷 매무새를 바로 잡고, 박수를 쳤다. 두 사람 다 벌게진 얼굴의 홍조가 확연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투표가 끝나고 최종적인 시안이 결정되면서 내일까지 우리 측으로 결정된 시안에 대한 최종 확인 연락을 해주기로 하고 회의를 마치기로 했다. 날밤을 깐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회의장을 빠져 나가고, 김 대리가 장비를 차로 갖고 나간 사이, 공교롭게도 회의실 안에는 서류를 정리하는 나와 기획실장, 그리고, 미라, 이렇게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수고하셨네요.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피곤을 좀 덜해 드릴까 해서 제가 아내에게 쑈를 좀 부탁했는데 잘 보셨는지요?’



‘네? 쑈라뇨?’



나는 어두워서 좌중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런가요? 허허….’



기획실장이 먼저 자리를 비우고, 그녀가 나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 나는 참았던 말을 뱉고 말았다.



‘미라야, 너 왜 그러고 사니? 그렇게 살지 마라.’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바르르 떨면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나와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나는 그녀와 돌아서 있었지만 문틈에 서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실장을 나는 볼 수 없었기에, 그녀의 대답이 몹시도 기다려 지는 참이었다.





‘그런 말씀 하실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요? 저 예전보다 엄청 행복 하다구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안녕히 계세요. 필요한 사항은 멜로 보내죠, 그럼, 이만…’



그때 방을 비웠다고 생각한 실장이 방으로 다시 들어서면서,



‘표 팀장님, 제 방에서 커피나 한잔 하고 가시지요.’



라며,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나는 직원에게 먼저 가라고 이르고 가겠노라고 하고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헐레벌떡 문에서 나오는 김 대리에게 내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가라고 일렀다. 그리고 임시로 확정된 로고와 상호에 대한 특허관련 유사성 조사도 아울러 부탁했다. 실장의 방은 회의실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방 안에는 미라가 없었다. 실장은 거만한 자세로 안락의자에 기대어 나를 맞았고, 나는 집무실 대형 탁자 앞의 손님 접대용 소파에 앉았다.



‘삐’



‘음, 차좀 들여와. 세잔!’



사람은 두 사람인데, 어째 세 잔? 차가 들어오고, 비서가 나간 후에도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어서….흑…..먼저 드시죠…흑 …나는 지금 볼 일이 바빠서 ….쬐끔 나중에….’



눈을 슬금 슬금 감으며, 안락의자에 깊게 기대는 폼이 영 이상했다. 그 때 나는 탁자의 밑에서 위로 조금씩 솟았다가 꺼지는 머릿결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쩝쩝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서 실장님도 드시….’



‘이제 그만 됐으니 탁자에 기대, 어서!’



명령쪼로 소리를 질러대서 나는 말을 하다 말고 꿈쩍 놀라고 말았다. 탁자 밑에서는 여자 한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린 채로 탁자 안에서 슬그머니 일어나고 있었다. 나를 향해 돌아서서 탁자에 상체를 엎드리면서 기대는데, 그것은 바로 미라 였다.



‘어디서 많이 보던 보지 아닙니까? 맛있기는 한데, 찰진 맛이 영…지금이라도 생각 있으시면 표 팀장도 한번 와서 같이 쑤시지 않겠수? 그래도 똥꾸녕 맛은 죽이지..’



내가 있는데도 실장은 아랑곳 하질 않고 그녀의 치마를 위로 훌렁 까 뒤집은 채로 나를 보면서 좇대가리를 미라의 씹구녕에 쳐 박고 있었다. 이혼한 전처의 노예생활. 나는 눈 앞에서 목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회의실에서도 미라를 부추 켜서 가랭이를 까발리며, 나에게 노출을 시켰을 것이고, 그로 인해 흥분된 실장의 좇을 그녀는 팔을 뒤로 해서 쓰다듬었던 것 같다. 이미 재혼해서 딴 사람의 아내가 된 미라의 저런 일탈적 섹스도 나는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래 전 기억 속의 사람이었으며, 잊혀진 전남편 이었기에…



‘고개 들어, 이 쌍년아! 보지 빨아달라고 지 사무실에서 씹구녕 까발릴 때는 언제고? 내 표팀장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이혼하기 오래 전부터 내가 꿰차고 있었수. 그 불나는, 노는 보지가 지근대는 것을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쑤셔 주었는데, 결혼한 남의 여자 씹구녕 쑤실 때는 좋았는데, 그게 내 여자가 되고 나니, 별 맛이 없단 말씀이야. 내 말 이해가나? 어서 똥꾸녕 이나 확 좀 벌려 봐. 또 말 안 들으면 임원분들 모시고 가서 또 한바탕 떼씹 해버린다! 그때처럼!



그녀는 아니라면서 턱으로 탁자에 얼굴을 고인 채로 두 팔을 뒤로 벌려 똥꾸녕을 죄우로 좌악 벌린다.



‘여보, 어서 쑤셔 줘, 이렇게 당신 말 잘 듣고 있잖아? 나 당신 좇대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어서…어서…억’



그녀의 항문이 꿰 뚫리고 있었다. 커피 잔을 든 내 손도 동시에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었는지?



‘자, 빨어, 네 똥찌끄래기 묻은 것, 네가 빨아야지 누가 빨아주겠냐? 얼릉?’



‘쪽쪽…쭉쭉….흡흡, 쭉쭉’



똥꾸녕을 박다 말고, 실장은 내게 잘 보이게 하려는 의도처럼 옆으로 서서 미라의 입안에 그 냄새 나는 좇을 쳐 박았다.



‘이 년이 글쎄 어느 날, 임원 분들을 모시고 들어가 한판 거하게 벌리 려고 하는데, 딴지를 걸지 않겠수? 그래서 들고 덤볐지!’



‘들고 덤비다뇨?’



‘얌전하게 돌려 먹든가, 사이 좋게 떼씹을 해주려고 하다가 모두 획 돌아버린 거지 뭐겠어? 그냥 못 움직이게 붙들고는 입이며, 똥꾸녕 이며, 보지간에 할 것 없이 피비치게 쑤셔 박아 버린 거지. 지 년이 따라 주었으면, 얼마나 좋아? 서로 즐기고, 씹구녕 찢어 트리지 않고, 화기애애하게 돌려 박고 말이야.’



나는 아연 할 수 밖에 없었다.



‘자 또 벌려 봐. 오후에 이렇게 씹 한 번 걸쳐야 또 일이 돼지, 않 그래? 화냥년 같으니라구! 야, 이 썅년아! 어디라고 나랑 씹질 하다가 울면서, 전남편 이름을 불러대? 이게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헉헉헉헉….아! 보지 근질거려… 여보 더,더,더 더 쑤셔줘요. 나 확 미쳐 버리게…’



‘그래 미치기도 하겠지. 윽윽윽… 꿈에서도 잠꼬대 하던 전 남편이 보고 있고, 퍽…퍽…..퍽….퍽…….지금 남편이 이렇게 허벌나게……..퍽….퍽…퍽….. 쑤셔 주고 있으니… 넌 복 받은 거야, 씨발년아. 윽윽윽…… 아….ㄱ’



기어이 실장은 미라의 보지 안에 사정을 했다. 그것도 내 앞에서…그녀는 울면서 실장의 좇이 빠지기 무섭게 치마를 내리고, 방을 뛰쳐 나갔고, 실장은 능글 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바지를 추스리며, 소파로 나와 앉았다.



‘어떠셨소?’



‘……’



‘오랜만에 대하는 전 부인의 보지가?’



‘말씀이 너무 심하시군요.’



나는 화를 끝끝내 가라 앉히면서 대꾸했다.



‘그랬나? 아무튼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내가 표 팀장을 부른 것은 우리 사이에 거래를 틀 수 있을까 해서 말이지.’



‘무슨 거래를?’



‘나, 사실, 당신 부인이랑 결혼할 마음, 없었거든! 그저 매달리고, 치근덕대고, 이혼 전에 몇번 쑤셔준 걸 갖고, 치사하고 미련하게 들어 붙는 바람에, 선심 차원에서 해 줬는데… 이제는 너무 싫증이 나서 말이지. 나야 이제까지 혼자 살면서 이 보지, 저 씹꾸녕 골라먹는 재미에 산 놈인데, 이런 붙박이 생활이 좋겠어? 봤다 시피, 재미가 없다 보니 허구헌날, 쓰리썸에, 떼씹에 스와핑에 번거롭기가 그지 없단 말씀이야. 그러니, 도로 데불고 갔으면 싶어서 말이야.’



‘아니, 사람이 물건 입니까? P었다가 넘겨주게?’



‘뺏기는? 아직까지도 자네 꺼라니깐? 잠꼬대도 아직 해. 그러니 내가 부아가 않 치밀겠어? 몸뚱아리만 내게 왔지. 마음은 아직 자네 한테서 한치도 떨어져 있질 않다니깐 두루?’



‘그래서요?’



‘그러니, 내가 선심 쓰지, 깨끗하게 자네가 원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이혼해 줄게. 그런데, 나도 맨입으로는 안되고..저런 훌륭한 보지를 버린 자네도 나는 이해가 않 되고… 아니, 그 당시에는 몰랐겠지. 여자 보지는 남편 하기 나름이라는 선전 문구도 자네는 모르남? 암튼 나에게도 콩고물이라도 떨어져야 하잖아? 그러니, 이번 CI껀을 반값에 해줘. 회사에 내 체면도 있고, 안 그래? 이곳에서 세금 계산서는 계약금액 대로 끊어서 줄 테니 그 돈을 회사로 다 갖고 가지 말고, 내게 반만 돌리라는 거지. 세금계산서는 내가 임의대로 이중으로 끊어줄 수도 있으니 그 쪽 윗선만 잘 쭈물러 놓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어? 마누라 인도하는 값 치고는 싸지, 암, 싸지… 저런 맛난 보지, 어디 가서 그 값에 찾을 수나 있겠어?’



나는 회사를 나와 여러 시간 고민했다. 나는 기어이 사장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그 프로젝트를 반값에 낙찰 지었고, 앞으로 있을 몇 개의 프로젝트에서의 프리미엄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지었다. 6개월에 걸친 CI교체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나는 아내와 다시 합치게 되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그 회사는 너무도 불운한 길을 걷고 말았다. CI의 교체작업이 일어나자 마자, 신문에는 기획실장이 공금을 유용해서 주식투자를 하다 모두 날리고,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실렸고, 그 회사는 예상치 못하게 불어 닥친 IMF 한파로 인해 도산하고서 은행관리로 넘어가고 말았다.



‘당신, 신문기사 봤어?’



‘응, 유강그룹 말이야? 봤지.’



‘어떻게 그렇게 큰 기업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가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의 로고 안, 곳곳에 반짝이는 섬광처럼 보이는 부분이 내가 새로이 만들어 디자인 해 넣은 구멍이라는 것을. 로고에 뚫린 구멍. 사람들은 번쩍이는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했지만 구멍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그 그늘까지 만들어 놓은 사실에 비토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한낱 그림이긴 하지만 구멍 뚫린 로고를 온 회사와 제품에다 박아 놓았으니, 돈이 어디로 새어 나갔겠는가?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하수구와도 같은 것이었을 게다.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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