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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빛 연인들 - 7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31 906회 0건
아래는 잘 아실 故 김광석님의 노래입니다.
경쾌하고 기분 좋아지는 노래에 가사도 대단하죠.
명곡을 워낙 많이 남기고 가셔서 저도 손꼽기가 어려운데..
아마도 김광석님의 노래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세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gPOWn2zgtI

=




兄死娶嫂

7부







시원하다 못해 조금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경쾌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차창 밖을 바라보는 여인.
사-사-사-아-
가벼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린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그림처럼 흩날리는 머릿결을 향해 남자의 시선도 향한다.
그녀의 눈가에 살짝 고인 눈물이 보였다.


가로수길의 벚나무를 바라보며 노래 부르는 그 얼굴, 그 옆 모습이 처연하다.
핸들을 쥐고 하연의 얼굴을 힐끗 거리던 민규.
너, 무슨 착잡한 생각을 하고 있길래...
쓸쓸함 가득한, 슬퍼보이는 얼굴에 가슴이 저며왔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민규가 뒷구절을 이어 부르자 하연이 고개를 돌리고 본다.
물끄러미~
반가움의 눈빛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이 아이도 "아련한 그리움"을 잘 알고 있을까.
그렇게 하연은 민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알고 있어? 이거..”
“응~ 김광석 노래잖아..”
“아, 아는구나..”
“하하, 알지,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도...”
“.... 그거 알아?”
“뭘?”


하연이 아예 민규에게로 몸을 돌린다.
민규도 하연의 이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희미하게 의식적으로 웃고 있는 그녀의 미소.
그 뒤에..
알게 모르게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우둔한 민규도 그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노래를 내가 부를 때는..
지금처럼 바람을 쐬며 나들이 가거나..
아니면~ 기분이 슬퍼 주체하기 힘들 때, 둘 중에 하나야”
“......
그럼 지금은 어느 쪽이야?”
“니가 맞춰볼래?”
“내가? 글쎄, 모르겠어..”
“후훗..”


민규의 궁금해하는 얼굴을 뒤로 하고
지잉- 버튼을 눌러 창문을 조금 닫았다.


“정답이 따로 없어. 지금 내 감정은..
말로 이렇다~하고 딱 정의내리기 어려워”
“뭐야~ 그게 본인이 직접 모르면..
누가 퀴즈를 푼다고..”
“후후, 그걸 추측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아?”


봄타나... 이 자슥이..
속마음은 짐작이 안 가지만 한가지는 명확했다.
하연 요 계집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굴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어두운 안색을 보아하니~
적지 않게 마음 고생 하는 사연이 있을 거라고.


국회의사당 주변을 슬쩍 차로 한바퀴 돌아본다.
윤중로 벚나무길을 따라 가볍게 드라이브를 즐기던 두 사람.
이윽고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저기~ 오다가 보니까 경찰 아저씨들 근무 서고 있더라?”
“ㅎㅎ 전경이야~ 군인이지. 그 사람들도”
“복무중인 거야, 그럼?”
“어~ 재수 좋아서 그쪽으로 빠졌다고 보면 돼..”
“왜? 불편해보이고 하루 종일 몸도 못 움직이고.. 힘들 것 같은데”


“에이 몰라~ 나도 자세히는..”
“앗!”
“왜 그래 또?”
“민규야, 나 저거~ 솜사탕 좀 사주라..”
“.. 헤에~..
너도 저런 걸 먹냐?”


하연과 민규는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인 벤치에 앉았다.
적당한 크기의 분홍색 솜사탕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척 재밌어하며, 싱글벙글 웃는 하연이다.
그 아기처럼 해맑은 얼굴에..
보고 있던 민규도 피시시~ 웃었다.


“그렇게 맛있냐..”
“어~ 얼마나 오랜만에 먹어보는데
솜사탕 파는 곳이 요새 있어? 거의 사라지고 없잖아..”
“그런가? 생각해보니.. 대학가에서는 거의 안보여”
“그치?~
있기야 있겠지. 근데 찾기가 쉽지 않아~”


“ㅋㅋ 그래 많이 먹어..
너 근데 먹으면서 뭐가 또 부족한 얼굴 같다?”
“.. 응..
양이 너무 적잖아, 살때부터..”
“ㅋㅋㅋ 이것도 먹어라..”
“와!~”


이런 면이 있었다니.
민규는 생각했다.
마치, 최근에 소개팅을 하고 만남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이 같다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자신과 그녀의 지금 모습도 그렇게 싱숭생숭하니까..
뭐 마찬가지 의미겠지.


“배고프다~ 슬슬..”
“그래? 이제 다섯시 밖에 안됐는데”
“내가 오늘 점심을 대충 때우고 말았거든~
그냥 화딱지 나는 일이 있어서.. 빵이랑 우유만 먹었어”
“풋, 점심을 그렇게 먹으면 배가 고프지.
오늘 약속 빵꾸난 거 때문에.. 마니 열받았었나봐”


“... 응~ 꼭 그것 뿐은 아니고, 비슷한 일이야.
딱히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에.. 좀 단순하게 얘기해봐”
“됐어~~ 우리 밝은 얘기만 하자.
이렇게 벚꽃이 활짝 펴서 이쁜데..^^ ”
“그럴까?”


하연의 젖은 눈가에 손가락을 대고 스윽-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감히 행동에 옮기진 못했다.
다만 밝게 미소짓는 그 모습에 민규도 기분 좋게 웃어주는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둘은 나란히 벚나무 길을 걷는다.


(하)
“시원하다~”
(민)
“아직 따듯하네.. 바람도 적당해서 좋고~ 그치?”
“응, 딱 좋아 날씨. 약간 노을이 지고 있는 느낌도..”
“엉, 나도. 어두워질랑 말랑할 때 그 하늘이 좋아”
“너도~ 그런게 있어?”


“있지. 석양이 저물어가는 그 때의 느낌 있잖아.
나 감성적인 남자야..”
“ㅎㅎ 그래.
하루를 마감하는 이 시간이 주는 마음의 안식처럼~ 달콤한 것은 없지”
“작은 선물처럼 다가오는~”
“으응...”


짧지 않은 벚나무길을 사이좋게 걸으며
두 사람은 그렇게 아름다운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여러 연인들이 다정하게 걸어다니고 있었다.
민규는 반박자 앞장서 걷는 하연의 뒤를 보며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가 연인이라고..
전처럼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이 순간 만큼은 잠깐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하연을 오랜 시간동안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5년만에 만난 후에도 크게 설레이는 감정은 갖지 않았다.
솔직히 그런 기분이었는데..
최근들어 보여주는 녀석의 행보를 보니, 감을 잡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봄내음 물씬 풍기는 옷차림이면..
더더욱 외로움으로 지쳐있는 민규의 가슴이 들썩인다.
아름답게 길가를 장식하는 벚꽃과 어울려~
하연의 아리따운 자태가 계속해서 눈 앞에 아른거렸다.


“이렇게 불쑥~ 그냥 막 나와버려도 진짜 괜찮겠어?”
“괜찮아.. 한두시간 개인사정이 있을때는 어쩔수 없는걸 뭐”
“주임님이 계시기야 하겠지만..”
“그런건 신경쓰지마”
“.. 알겠어..”


조금 전까지 과사무실에 나란히 앉아있던 둘은
하연의 갑작스런 제안에, 퇴근 시간보다 미리 빠져나왔다.
사무실에 인접해있는 교무처 직원에게 자리를 맡겨둔다.
이래도 되는지 싶지만..
걱정 붙들어매라는 하연의 말에 민규도 잠잠해졌다.
지가 기분도 꽝이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다는데 어쩌겠어...


“좋다...
나는~ 벚꽃도 좋아하지만, 목련이 참 좋아”
“목련..? 목련이 어떻게 생겼지?”
“목련도 몰라?
바보야 푸흣~ 것두 하얗게 피는 꽃이야.. 벚꽃처럼 이파리가 작진 않지만..”
“아, 하얘??
나는 이름만 듣고 왠지.. 노란색이나 비슷한 꽃인줄 알았어”


“호호 말이 되냐..
아! 노란 목련도 있기는 있다”
“있어, 노란 종류가?”
“응~ 굉장히 드문 품종이라던데 있기는 있어.
국내에 단 한곳 수목원에 있다고.. 아마?”
“ㅎㅎ 근데 목련 얘긴 갑자기 왜 했어..”


“오늘 아침에 베란다에서 밖을 보는데..
우리 아파트랑 앞동 사이에 서 있는 목련나무가 많거든.
하얀 꽃봉우리가 망울져서 막 피어나려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설레는지, 그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벚꽃이나 목련이나 거기서 그거지 뭐..
그래도 민규는 하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웃어주었다.
이야기하는 그녀의 미소가 어느 사이 많이 밝아졌다.
이런 싱그러운 웃음을..
이쁘게 웃으니까 참 보기 좋구나.


“벚꽃이 그래도 난 좋아. 제일 이쁜 것 같어”
“나도 벚꽃을 제일 좋아해..
단지 피고 지는 기간이 너무 너무 짧아서..”
“... 짧아서 많이 아쉬워?”
“응~ 금방 사라지고 마는게 정말 안타까워..”
“그렇구나..”


꽃에 대해서 많이 알지도 못하고 무감각했지만
민규도 하연처럼 벚꽃만큼은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이렇게 흐드러지는 것도 잠시일뿐~ 이제 곧 지겠구나-
싶은 생각에 씁쓸함을 느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연의 감정이 주는 이끌림에 동화되는 기분이다.


“하연아. 나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뭘.. 물어보려 하는데..”
“내가 물으면.. 네가 거기에 속시원히 대답해줄거야?”
“하하~ 뭐냐?
그거야 질문이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그래도 조금 아까 차를 타고 오면서
슬픔이 많이 깃들어 있던 눈보다는 많이 밝아졌다.
후~
지난주부터 꼭 건네고 싶었던 이야기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분위기를 타고
그렇게 용기내어 입을 연다.


“니가 동준이랑 많이 친하잖아. 나하고 비교해서..”
“동준이 얘긴 갑자기 왜? ...친하지”
“나하고.. 옛날에..
헤어지고 나서 계속 연락했던 거 맞지?”
“......
걔가.. 너한테 그랬다고 말해?
친한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꾸준하게 연락을 유지했다거나 만나지는 않았어..”


하연도 민규가 예상치 못한 동준 이야기를 꺼내자 긴장한다.
아직 질문의 의도가 무언지를 몰라서
은근하게 그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다.


“응, 동준이 얘길 갑자기 꺼내서 미안해.
그게 목적은 아니야.
그냥 동준이는 나랑 젤 친하니까 내가 너랑.. 그렇게.. 멀어지고 나서..
어색하니까 도와주려고 자꾸 그러더라고”
“아아.. 알겠어. 대강 니가 하려는 그 얘기..”
“응~ 말 안해도 짐작이 가지?”
“일단 동준이 이야기는 편하게 얘기할 생각으로.. 맞지?
또~ 그리고?”


“응...
내가 사실은 니가 접때 통화하는 걸 들었거든”
“무슨 통화..”
“... 너 애인같은 사람하고 말하는..”
“에에~?..”


여기까지 말하고도 어떻게 말을 이었는지,
민규 본인도 그리 떨지 않았기에 되려 신기했다.
긴장은 되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오히려 하연이 민규의 얼굴을 보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앤이라고.. 말 안했는데.. 통화하는 걸 들었..다고?”
“어~ 그때..
불쑥 얘기해서 미안하다.. 기분 나빠하지마”
“..... 칫,
할 얘기 태연하게 다 해놓고 이제 와서..”
“그런가? 헷”
“그래~ 멍충아”


떨리는 심장을 어렵게 짓누르며 말을 던졌는데
쿨한 얼굴로 웃으며 받아주니 다행이었다.
용기를 낸 보람이 있구나.
하연의 해맑은 얼굴을 보자 자신감이 생긴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또 질문하려는데, 하연이 먼저 말을 이었다.


“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하나?
결론은.. 우리 박민규님,
그래서~ 내가 앤이 있나 없나~ 궁금하다는 이야기지?”
“어.. 말하자면”
“너도 어지간히 급했다 야..ㅎㅎ
안그래도 나 너랑 저녁 먹으면서 얘기할까 말까 했던건데..”
“아.. 그랬어..??”
“응~”


아뿔싸. 그럼 내가 괜히 먼저 얘길 꺼냈나..
아니야.. 그래도 어렵게 말 붙이길 잘한거겠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배가 고프다는 하연과 무얼 먹을까 상의한다.


아름다운 벚나무길 여기저기에 아직 산책나온 사람들이 많다.
하연과 민규도 걷다가 다리가 아파, 광장 잔디밭에 주저 앉았다.
잔디가 더 따듯하네?
재밌게 서로 장난을 치며 티없이 밝게 웃는다.


광장 한가운데는 덩치가 제법 좋은 외국인 할아버지가
연신 풍경에 감탄하면서 벚꽃을 찰칵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인도 옆에 잘 정비해놓은 자전거 도로에도
드문 드문~ 가벼운 옷차림으로 달리는 자전거가 보인다.


“아하하~ 저 사람 봐..”
“누구?”
“저기.. 에고 나 목소리가 좀 컸다..
썬글라스 낀 백인 할배..”
“어디.. 아, 하하하~ 귀엽게 생기셨네~”
“무천도사 닮았어”
“뭐? ㅋㅋㅋㅋ
너 눈썰미 좋다~ 잘 보니까 좀 비슷한거 같네 ㅋㅋ”
“쿠쿠, 그렇지?”


갑자기 빵 터졌다.
좀 만화 캐릭스러운 느낌이긴 했다.
하연의 재치가 재미나서 민규도 실실 웃게 된다.


“아직 그래도 깜깜하진 않다..
앗~ 트럭에서 파는거 저거 뭐지?”
“트럭에?”
“응.. 잘 보니까 마른 오징어 같은데?
나 먹구 싶당! 민규야~”
“난데 없이 또 오징어냐..
아까 먹은건.. 밥 먹어야지..”
“히히~~ 이리 와봐, 함 보자. 냄새가 좋차나”


피식- 웃으며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민규.
하연은 군것질거리가 나타나자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과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중년의 아저씨가 솜씨 좋게 구운 마른 오징어가 불티나게 팔린다.
냄새가 시원한 바람에 쓸려 코끝을 간지럽히는데
5천원이라고 쓰여있는 가격을 보고 하연이 멈칫한다.


“으왕.. 두마리에 오천원이래. 좀 비싸넹”
“ㅋㅋ 비싸잖아. 그래도 먹을 거야?”
“음.. 히히, 사줄수 있어?”
“풋~ 야, 돈 아깝다~
그냥~ 우리 제대로 된 밥먹으러 가자”
“잉.. 그럴까..?”


이놈은 그렇게 어른스럽고 쿨한 모습만 보이더니-
이럴 때는 또 어린애처럼 사달라고 조르네..
그 어마어마한 갭이 적응이 안된다.


사실 방금 전,
하연의 애교섞인 혀 짧은 말투에도 흔들렸던 민규다.
아이처럼 필살기 눈빛으로 은근하게 웃는데~
이런 모습이 어디서 튀어나왔나..??
싶은 생각에 자꾸 웃음이 난다.


“와- 저기서 사진도 찍는다. 민규야~”
“그러네~ 아까는 진작 못봤을까~?”
“호호. 벚꽃을 배경으로 이렇게 찍어주나본데?”
“응.. 가족들끼리 찍으면 좋겠다..”


연인들끼리도 찍어달라 하면 좋겠다..
그렇게 민규는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지금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
이따가 저녁 먹고 오면서,
사진사 할아버지 계속 있으면~ 찍자고 권해볼까?



둘은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복날도 아니고..
각자 삼계탕으로 허한 배를 달래며 저녁 해결.
뭐든 식후경이다.
한식당 내 따듯한 방바닥에 편하게 다릴 뻗고 각자 앉았다.
아까 오면서 폰에 담았던 예쁜 석양과 벚나무들..
그 풍경들을 기쁘게 확인하는 하연이다.


사진이 잘 찍혔다고 히히덕거리는 하연.
민규는 물을 쪼르르- 잔에 따라 마시며
그런 하연의 웃는 모습을 건너에서 곁눈질한다.
말은 않고 그 역시도 즐거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이렇게 다양한 미소와...
지극히 여성스러운 감성도 두루 갖추고 있는 아이였다고.
왜 나는 이런 모습을 정말 몰랐지?
우린 함께 있을때면 늘 싸우고 사이가 나빴는데..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눈치도 없고 너무 답답해서
하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녀석의 무뚝뚝했던 성격도 그동안 오래 못본 사이..
감정을 잘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했을지 모른다.
강산도 절반이나 변했을,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니까..


“사진들이~ 다 잘나왔어~ 밍규야”
“응 내가 봐도 화질도 괜찮고.. 잘 나온거 같아”
“그래 그래. 우리 셀카봉 같은거 좀 가져올걸 그랬나봐”
“셀카봉이 뭐야?”
“뭐냐니.. 셀카봉 뭔지 몰라?”


아~ 모를 수도 있겠구나.
잠깐 뚱~한 얼굴로 민규를 본다.
하연도 예전같으면 화만 내며 또 모르냐고 나무랐을텐데..
잠시 웃더니 토독- 토톡- 액정을 두드려 뭘 찾는다.


“자~ 이거야. 아직 못봤어?
말 그대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핸드폰에 다는 막대기~”
“아, 이런 것도 있어?”
“후후후~ 너다워.. 모를 것 같더라.. 큭큭”
“헤헤, 요즘은 셀카를 별별 방식으로 다 찍는구나”


“그르게.. 마니들 찍어 요렇게”
“오늘만 날도 아니고..
다른 날 벚꽃보러 또 놀러오자, 하연아”
“하하, 고작 사진 하나 찍으러 다시?”
“어때서~? 사진 자체가 의미있는 거지..”
“음, 그럴까..?
하긴 맞아.. 어느 순간이든, 사진은 추억을 담는 거니까..”


추억을 담는 사진.
셀카라는 형식이니만큼, 하나가 아닌 둘이 같이 찍는 사진인데..
이 녀석 은근하게 나더러 같이 찍자고 부추기네?
그렇게 생각하며, 얼떨결에 다음번 데이트를 또 예약한다.
이건 내가 의도한건 아니고..
정하연이 먼저 동의한거니까 상관없겠지~
어쨌든 기분이 매우 좋았다.


별다방으로 자리를 옮긴 둘은
하연 - 핫초코, 민규 - 카페라떼를 마시며
편하게 쿠션에 몸을 기대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런 저런 그동안 못했던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깥을 보니, 벌써 껌껌해져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지금 여덟시가 다 되가”
“벌써?”
“응~ 놀다보니까 시간은 잘 가네 ㅎㅎ"
“그러네 호호~”


저녁에 술이라도 먹으면서 하연에게 얘길 청할 작정인데
민규 본인도 지금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술을 먹어야 속마음을 꺼내긴 좋다만,
차를 몰고 와서 걱정이고..
대리를 부를까, 아니면 지금 그냥 물어볼까?
혼자서 머릿속으로 고민을 반복한다.


“야~~아~? 여기좀 봐~”
“응..? 어 미안하다”
“또~ 딴 생각하고 있었지? 밖에는 뭘 그렇게 봐”
“하핫~ 아니야 그냥 멍때리고 있었어..”
“나 혼자 실컷 얘기하고 너 보니까 딴데 보잖아~ -_-”
“미안 미안.. 헤헤헤. 잠깐 생각할게 있었나봐..”
“어쭈.. 생각할 여유도 있고..”


지금 그냥 꺼내자.
꿀꺽, 머리로 생각해도 입 여는건 역시 어렵다.
기껏 한마디 털어놓으면 그만인데~
그 말 한글자를 여는 순간이 젤 어렵다니까..


“그... 아까 전에.. 얘기 마저 해보자..”
“?”
“아까.. 너 애인 이야기.. 말야~”
“아. 그래..”


하연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표정이 야릇하다.
민규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피하려는건지, 뺨이 가볍게 붉어진다.
녀석도 적지 않게 당황하는 눈치다.
쭈빗 쭈빗..
하연은 민규의 채근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
후우~ 나도 예상밖으로 숨이 차네... 네 말이 맞아.
나 아직.. 만나는 사람이 있어”
“역시.. 사귀는 사람 있지..?”
“응~ 있지.
너한테.. 숨길 생각은 없었어”
“없다면서.. 왜 여태까지 아무 말 안하고 있냐”
“호호~ 그걸 구태여, 입으로 말해야하니.
말할 기회가 어디 있긴 했나?”
“그래도.. 내가 너한테 물어보지 않았으면..”
“쿡~ 그런가~?
아마 오늘 헤어질 때까지 말 안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돗자리를 잘 깔아놓은게 틀림없다.
민규는 자기도 모르게 하연의 고백 아닌 고백(?)에
얼굴이 서서히 딱딱해지고 있었다.
하연도 민규의 분위기가 슬쩍 변했다는 걸 눈치 챘지만,
애써 모르는척.. 외면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따듯한 초코를 마시니 입이 술술 열렸다.


“누군데, 어떤 사람이야?”
“급하기도~ 바로 그렇게 알고 싶어?”
“궁, 궁금하잖아..”
“호호호”
“뜸 들이기는...
설마 전에 그 형, 아직 만나고 있는 거야?”
“누구..??
... 아~ 너 혹시, 진수 오빠 말하는거야?”
“이름이 진수였나 그 사람.. 어 맞는 거 같은데..”


그래.. 생각났다..
기억났네. 최진수.
자신에게서 하연을 빼앗아갔던 남자의 이름이었다.
왜 이제야 생각이 나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눈 앞의 이 녀석을 잊지 못해.. 괴롭게 만들었던 주범인데..
이를 부득 부득 갈고 원망했지만
정작 묵혀져있던 이름은 이제야 기억이 난다.


“맞아. 최진수... 그 사람 지금은 헤어졌어”
“언제?”
“그때가 언젠데 너는..
1년 조금 못되게.. 사귀었어.. 아니다, 몇 개월도 못갔던 것 같아..”


하연의 입이 무거워보인다.
그녀도 담담한 척 연기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옛 연인이자 친구 앞에서 사겼던 남자 이야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민규가 편안하게 보조를 잘 맞춰준다.
실제 사귀었던 기간은 10개월 정도인데..
민규 눈치를 보면서 말을 조금씩 생각 끝에 바꾼다.


천천히 긴장된 얼굴로 털어놓은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같은 학부의 최진수라는 오빠는 민규와 교제하던 사이,
여름 방학때 우연히 영화를 보러갔다가 마주쳤다고 한다.
당시 민규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아 크게 싸웠단 하연.
개강하기 전까지 민규가 연락안하면, 본인도 끊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만난 선배가-
학교에서는 그닥 가깝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바깥에서 만나 새로운 사람처럼 신기한 기분도 들고 조금씩 가까워지니~
서로의 관심사와 취미도 비슷해서 빠르게 가까워진 것이다.


하연은 민규를, 정말 좋아했다.
그녀도 쑥스러움 많은 내성적 성격이고 표현을 안했을 뿐..
스스로의 마음도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도, 어리숙한 남친과 자꾸 싸우게 되었다.


오랜만에 그녀도 말을 꺼내며 이런 저런 기억을 끄집어내다가..
예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사과를, 이 타이밍에 말하기 시작한다.


미안하다는 이야기..


정말 내가 죽일 X년이었다고..
이별할 당시에는 제대로 통보조차 해주지 못했고..
나 사실은
내내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되었었어..
떠듬 떠듬 힘겹게 입을 열어 말하면서
하연도 놀랄만큼, 온몸이 뜨거워지고.. 떨리는 진동을 느꼈다.


“......”
“그랬었어.. 미안해..”
“.... 아니야.. 이제 와서..”
“훌쩍, 훌쩍.... 내가...
정말 많이.... 나빴어... 민규야.. 훌쩍..”
“괜찮다니까, 뭘 그렇게 우냐..
아.. 미치겠네.. 사람들 다 보는데..
야, 얼른.. 아휴.. 이걸로 눈물 좀 닦아..”


이게 뭔 당황스런...
진지하게 분위기 잡고 이야기한건 좋았는데
갑자기 말하던 도중에 복받치는 감정을 못이겨 눈물을 터뜨리다니..
이렇게까지 하연이 눈물을 쏟으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주체못하고 울줄은 정말 생각 밖이었다.
민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만 있다.


이런 상황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연애 초보라..
어떻게 달래줘야할지 몰라서 땀만 삐질 삐질 흘렸다.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하연의 얼굴.
티슈를 꺼내 화장이 번지지 않게 닦아주느라 바쁘다.
여자가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도 없는데...


졸지에 울린 놈이 되니,
사방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초리가 아주 따가웠다.
씨발 그렇게 보지마, 내가 울린거 아니라고!


그렇게 오래지 않은 시간인데,
실제로 두 사람이 체감하는 그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다.
한참을 울고 다스렸다고 생각한.. 그와 그녀.
얼굴을 어렵게 다시 마주한다.
감정을 추스르고, 가벼운 기초화장을 고치는 하연.


“휴.. 나 얼굴이 엉망이야.. 이래갖고..”
“아무렇지도 않아. 여전히 예뻐~”
“거짓말~ 피~ 마스카라가 다크서클처럼 번졌었는데..”
“하하하하- 부정하진 않을게.. 그건 그랬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졌어. 이뻐 진짜”
“칫~ 웃기고 있어.
나 잠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잠시 홀로 남겨진 민규.
그랬었구만...
천천히 하연이 해준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본다.
헤어졌다고.. 그럼, 지금 만나는 사람은 두 번째 남자일까?
아직 못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저 녀석도 실컷 눈물을 쏟았고..
이제 오거든 기분도 회복됐으니, 다 이야기할 수 있겠지..


그래도 고맙고 감사했다.
어색한 데이트 신청에도 기꺼이 응해준 것하며,
이야기하던 도중에 펑펑 울어가면서 자신에게 정중하게 사과한 것...
정말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했던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기뻤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돌아오는 그녀.
이제 더 차분하게 물어보기로 한다.


“뭘 또 자꾸 해달래.. 흥~”
“해봐. 이제 마음 풀렸지? 헷”
“풀리고 말고 할게 뭐 있어.. 첨부터 내가 잘못했던 거고..”
“사과해줬으니까 나도 기분 좋았다고..
그러니까 이제 지나간 일은 그만 말하자 우리~ 응?”
“니가 기분 좋으면 다행인데..
내 마음은 그냥 편하지 않으니까 문제지..”
“ㅋㅋ 알았으니까..”


어린애 같잖아. 진짜로.
이게 내가 알던 정하연이 맞나?
짖궂게 놀리고 어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하연의 새로운 면모를 매 순간 발견하며~
두근 두근 설레는 맘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보는 민규.
하연도 눈치를 살피며..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편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나랑 만나고 있는 사람은..
나보다 네 살 많아, 그러니까 서른 살이지”
“30 이면 엄밀히 말해서 다섯 살 차이네 뭐~~”
“히힛~ 그렇게 양해해주게? 나 사실 26인데..”
“슴 여섯은 무슨 짜샤~ 너 나랑 동갑 맞아”
“깔깔~ 그렇게 말해주니까 나도 좋아~
한 살이라도 어린게 좋은거지 뭐~?”


“당연한 소릴.. 지 혼자 나이를 높이고 있어 ㅎㅎ"
“호호.. 그냥 제발 저렸나봐.
암튼~ 재성이 오빠..
아! 미안해..
지금 만나는 사람은..”


아직 하연에게 민규는, 동준에게 들은 이야길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설립자이며 낙하산으로 들어온 것이 맞느냐고.
차마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안하기로 마음 먹는다.


민규도 하연도 촉각을 곤두 세우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보다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열변을 토하는 것은 하연이지만
리액션을 잘 받아주고 싶은 민규도,
하연의 말 토씨 하나를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보니 분위기는 편안하다.


서른살이라는 현재 하연의 남친 이름은 김재성.
하연의 3학년 여름방학때, 인턴 알바를 하던 회사의 상사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IT 중견 기업 직원인데 지금은 갓 승진해서 대리란다.
대졸에 서른살에 대리면 잘 몰라도 잘나가는 건가..
민규는 혼자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집안이 빵빵해서 돈 걱정이 없는 남자다.
차도 1년에 한번씩은 신형 수입차로 바꾼다고..
성격은 전에 만났다던 진수란 사람이 섬세하고 다정했던 것과 비교해
열혈 마초스러운 타입이며, 감정표현이 솔직하다고 털어놓았다.
일도 열심히 잘하고 무엇이든 적극적이라 그건 좋다.


그렇게 하나씩 이야기하던 하연은..
조심스럽게 말꼬릴 흘리며 그런데 실상은 말이야..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천천히 늘어놓는다.


연애 관계에서 크게 소유욕을 갖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그는 하연과 만나면서부터 그녀에게 푹 빠져있다 못해
다소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하연도 그를 좋아하니까.. 좋았는데,
문제는 사귄지 3년쯤 지나며 알지 못했던 단점들이 보였다.
자주 다투게 되었고, 싸움이 잦아지다 보니
예전엔 알지 못했던 이 남자의 괴팍한 성격을 깨달은 것이다.


마초적인 성향이 적당하면 딱 좋은데,
최근에 와서야 여친한테 폭력을 가끔 쓴다는걸 알아버렸다.
무식하게 줘패는 건 아니지만 무섭게 위협하는걸 볼때면..
오만 정나미가 뚝 떨어지곤 했다.
그래도 정으로 근근히 버티고는 있지만..


거기까지 듣고 있던 민규,
궁금해 죽을 것 같은 점을 몇가지 물어본다.


“잠깐만, 그럼 김재성 그 남자는 너랑 같이 사는 거야..?”
“... 우움~~ 그게 왜..
너 이제까지 들으면서 그게 젤 궁금했어..? 호호”
“아니.. 제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아~ 이거 어떻게 말하지...
이야기하면 니가 좀 놀랄텐데..”


“나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으니까 말해봐..”
“호호~ 표정보니까 그런 것 같아.. 너답지 않은걸”
“쳇.. 그니까 이야기해봐”
“응~ 잠깐만, 나 물좀 마시고..
휴 긴장된다..”


오늘 여러번 긴장하네 녀석..
아까 그렇게 펑펑 울더니, 화장도 고치고 얼굴 다듬고 나자
오늘 점심때 갓 만났던 때보다 더 이뻐 보였다.
원래 짙은 화장은 잘 안하는데
약간 지운 뒤 민낯에 가까운 얼굴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뽀송송하니 하얗고 예쁜 피부..


꿀꺽.
애꿎게도 그 순간 민규는 사랑스럽다, 예쁘다..
그 생각보다도 엉큼한 마음이 더 들었다.
하연의 아름다운 몸매와 귀여운 얼굴을 위아래로 훑으니까
몰래 숨죽이던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서버렸다.
태연하게 허벅지 사이를 최대한 오므린다.


이어서 천천히- 느릿하지만 차분한 어조로 덧붙인 이야기는..
하연의 우려대로 민규를 경악하게 남들고도 남았다.
주변을 쉬~쉬~ 누가 듣지 않게 살펴가며
하연은 살짝 빛나는 눈으로 민규의 얼굴을 걱정한다.


1년전부터 동거해온 것은 일단 그렇다치고.
한차례 애를 지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무안한 얼굴로 말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둔하게도,
민규는 하연의 입장을 헤아리는 인지능력이 부족했다.
그저 지금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의도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 수술은 언제.. 했던 거야..?”
“시간 좀 지났지.. 작년 8월 쯤에 했으니까..”
“.... 나 너무 놀랐다 하연아..”
“후훗, 알아. 그럴거라 예상하고 말한 거니까..”
“꿀꺽...
그러면 지금 몸 상태는.. 괜..찮아졌구?”
“응~? 당근~ 그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
처음 수술할때는 말도 못하게 아팠었지만.. 호호..”


낙태를 한 것이 그녀 자신의 의지는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정말이야, 정말 내가 원해서가 아니었어..
되뇌이듯 힘주어 반복하는 말과 얼굴을 보며,
그것은 틀림없이 사실이라고 민규도 느꼈다.


애써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더니,
이윽고 참지 못하고 눈물을 또 터뜨리고 만다.
목소리가 힘없이 부르르르... 떨리면서
자신을 잘 가누지 못하고 몹시 힘들어하는 모습.
이쯤 되자 민규는, 주변에서 보는 시선도 있고
서둘러 하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천천히 걸어와.. 차는 어차피 바로 앞에 세워놨으니까..”
“응.. 금방 뒤따라갈게.. 미안해..”
“바보 미안할 일도 많다..”
“히히~”
“너.. 다리도 아까 살짝 삐긋하는거 같던데, 괜찮은 거고?”
“다리이~?
언제 그런거는 유심히 봤대.. 쪼곰 접질린 거는 맞아..”


사실은 하연아 니가 걱정되었다기보단..
공원 잔디밭에 앉아 있을 때, 너 다리 감상하느라 넋이 빠졌었어.
좀 꼴리기도 하고.. 미안해.
침만 삼키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얏, 하면서 가볍게 삐긋한 걸 내가 모를 리가 있겠니..


“조심좀 하지.. 걸음이 위태위태해”
“후훗, 그 정도는 아니야. 아까 일어나면서 살짝 다쳤나봐.
다행이지. 조금만 더 삐긋했으면 위험했을 수도 있는데..”
“아휴~ 그래도 조심 또 조심을..
뭣하러 키도 큰 애가 굽을 그런걸 신어갖고”
“헤에~ 나랑 예전에 놀때도 굽 높은건 못신게 했지 너어~
갑자기 그 기억이 난다 뀨야~”


“시끄럿...”
“ㅋㅋㅋ 왜~ 너보다 키 훨 커진다고 질색했었자나~
그래서 되도록 나도 운동화 신고 다녔는데~ 기억나네”
“그랬었지 ㅎㅎ 맞아..”
“응~ 암튼..
나 여기 조수석 조금 좁으니까, 뒤로 가서 앉을까?”


“어? 뒤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닌데..
아냐. 그러지 말고 시트 끝까지 젖혀도 되니까, 옆에 앉아”
“그래도.. 되겠어?”
“되지 당연히. 하이힐 벗고 다리 편하게 쭈욱~ 뻗고 누워있어”
“응... 그럼 그렇게 할게”


위기를 넘겼다.
순순히 하연이 말을 들어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뒷자리에 앉게 되면 큰 즐거움이 사라질 것 아닌가.
그 늘씬하고 먹음직스러운 하체와 가슴을...


아 이런 생각 좀 안할 순 없나?..
제기랄..
고개를 마구 저으며, 어찌됐든 뒤에 앉는 것은 제지시켰다.


일단 조금전까지 나눴던 무거운 주제를 잊으려고
가급적 무난하고 일상적인 화제로 다시 이야길 돌렸다.
굳이 낙태하고 몸조리 어떻게 했느냐는...
순박한 민규 입장에서는 감당 안되는 낯 부끄러운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도 않고, 물어보기도 불편했다.


“다리를 그렇게 다쳐서, 어디 먼데는 가지도 못하겠네..”
“나 이상 없다니까~? 자꾸 그렇게 말해 미안해지게~”
“정말야? 나 걱정 안시키려고 둘러대는 거 같은데”
“걱정도 팔자셔.. 너 편할대로 해 그럼~”
“바로 꼬리 내리는거봐.
역시 발목이 아픈게 맞았던 거지?”
“아~ 예~ 그렇다고 해두죠~”


질려버렸다는 얼굴이다.
민규의 압박아닌 압박에 하연도 쓴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도리어 전에는 느낄 수 없던..
민규의 따듯한 관심을 느끼고 은근히 기분 좋은 얼굴이다.


“이제 우리~ 어디로 가?”
“어디로 갈까? 너 쫌 편해야 되니까..
니네 집 근처로 데려다주든가 그러자 먼저”
“그래? 술 먹자며..”
“에잉~ 술 마시자는 이야기까진 안했는데..”
“했거든?”
“했어?”
“했던 것 같은데.. 호호”
“풋~”


아픈 다리를 살짝 민규 쪽으로 돌리며,
발목의 접질린 곳이 시트 바닥에 스치자 통증을 느낀다.
대수롭지 않았다고 믿었던 발목인데..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잔디밭에서 장난칠 때 다쳤나보다.
그제야 하연도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민규는 하연의 야릇한 신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다리를 살핀다.


“아흣......”
“너... 거봐! 다쳤던게 맞구만 자꾸 아니라고 우겨..
우길걸 우겨라 짜식아.. 아으~ 괜찮아?”
“쪼금.. 아프긴 아프네.. 나도 몰랐단 말야 이정도인줄은..”
“죽겠네.. 병원가자”
“병원? 이 시간에 하는 데가 있어..?”
“왜 없어~ 다 문닫았으면 응급실 가면 되지~”


“풋~~ 응급실까지야..ㅎㅎ
그럼 민규야, 그냥 나 집에 데려다줘”
“뭐, 응급실 가서 붕대 칭칭 감고 고정시켜야지 안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좀 오버해서 아픈 척 해봤엉~”
“....?
이게 사람 갖고 놀고 있어~ 진짜 아픈거야 뭐야~”
“호호, 아픈건 맞아. 근데 병원은 내가 가기 싫어..”
“왜 병원이 가기 싫어..?”


“부끄럽잖아..”
“잉?”
“나 옷도 되게 짧은데.. 스커트, 속옷 때문에..
여자가 다리도 다 보이는데.. 침상에 누울 생각하면..”
“... 아~ 여자들은 그런게 좀.. 쑥스럽나”
“응.. 그러니까 그냥 집에 가서 나 냉찜질하고, 약 바를게”


여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긴 하겠지만
생각해보니, 의사도 남자인데 부끄럽긴 하겠구나..
너그럽게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본다.
그래도 쉽게 수긍은 가지 않았다.
그런 식이면 산부인과 남자 의사한테는 어떻게 진찰 받으려고..
아, 이미 한차례 다녀왔겠네..
거기까지 결론이 미치자, 민규도 쑥스러고 미안한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지, 자신은 하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하연이 이렇게 여성미가 물씬 느껴지는 타입이었던가..
거칠고 당당했던 모습만 기억속에 남아있던 아인데.
지금 이렇게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꼰다는 것은...
민규가 알고 있던 ‘그때 그사람’과 전혀 매치가 안 된다.


하연의 집은 강동구 명일동이었다.
민규의 집에서 꽤 가까운 거리다.
풍납동이니까~ 조금만 마음 먹고 달리면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지난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렇게 이사도 서로 가지 않고 인근에 살았으면서 얼굴 한번 안 봤던 거다.
그러자..
민규는 잃어버린 지난 시간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나 데려다주네?~
선뜻 우리 집 앞까지 올거라고 예상 못했어 솔직히..”
“쳇.. 아픈 애를 길가에 버리고 가는 사람 아니야..”
“쿡~ 그런 뜻이 아니고~ 알면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여기 빌라 맞지?”
“응~ 너 기억력 쩐다..?”
“ㅎㅎㅎ”


하연은 민규가 대로에서 능숙하게 차를 유턴한 뒤,
큰 육교 아래 주택가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 집 근처에 다다르자
계속해서 이어지는 남자다운 모습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며, 내심 두근 두근...
떨리는 심경을 티나지 않게 숨기고 있기도 하다.


“저...”
“다 왔어, 가는데까지 내가 바래다줄게. 올라가자”
“계단 위에까지..?”
“응~ 너네 집도 가봤는데 무슨 문제야”
“그래도.. 호호 고마워”
“아, 참!”


“ ?? ”
“야... 너 왜 말을 안하냐.. 나 큰일날뻔 했네..
지금 들어가면 그 분 있으실거 아냐 집에..”
“그 분이 뭐냐? ㅋㅋ
말 편하게 해~ 막말해도 돼~”
“그래? 그럼 나 욕하는데..
그 색.. 아니, 그놈이 언제 퇴근하고 올지 모르는데 난 가야지..”
“...?
너 무슨 소리하는 건데? 나 혼자 살아”
“뭐??”


입이 쩍-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 몰랐다.
하연은 민규의 어리벙벙한 표정에 빵~ 웃음보가 터진다.
무슨 짐작을 하고 있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깔깔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얼떨떨하게 뒷머리를 긁는 민규를 보고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그의 어깨에 손을 턱~ 짚는다.


“바보.. 아이고 웃겨라..
그러면 궁금할 때 아까, 마저 물어봤어야지..
같이 살았‘었’다고 했지, 지금도 같이 산다고는 말 안했어”
“그 그..런 말은 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럼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응~! 원래 엄마 아빠는 따로 사니까”


“헐... 그 그럼..”
“ㅋㅋ 침 삼키지 말고~ 어여 들어와~
왔는데 뭐라고 먹고 가야지.. 나 발도 치료해주고 ㅎㅎ”
“야, 그건..”
“미안한데, 낑~ 에고~ 요것 좀 들고 올라와?”
“....
어~ 209호지?”


“...!!...
응.. 기억력 개쩐다 너..”
“글게, 나도 기억 나는게 더 신기하다..”
“나 쫌.. 소름 돋았어..
스토커 아닌가? 후후~”
“하하. 먼저 올라가, 차 세워두고 갈게”
“응..”


떨린다.
혼자 살고 있다고..
그럼 지금 들어가면 단 둘이잖아..
아,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므흣한 상상이 피어오르며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아하 그런가..
김재성이라는 개자식이랑은 진작 헤어졌나?
아냐 분명히..
아직 만나고 있다고 말했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꿀꺽...
일단 부리나케 사이드를 제끼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

민규와 하연의 달달한 로맨스에 시간을 모두 투자한 회입니다.
남고생도 초반에 그랬듯이 이 글의 초반 노선은 달달한 순애입니다.
적어도 성관계를 갖더라도 인물들의 캐릭터를 다 정립시켜 놓은 후에..
그런데 최근 댓글들을 보니 급하다는(!) 재촉들이 많으셔서, 빨리 진도를 빼야지 생각중입니다.
저부터 서서히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니, 하연에게 애정도 많이 생기구요.
8회를 살짝 귀띔드리면, 아마 끝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의도적인 겁니다.
하지만 차려진 밥상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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